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누굴 죽였을까 리뷰(심리 스릴러, 기억과 진실의 추적)

by happy stella 2025. 10. 3.
반응형

 

『누굴 죽였을까』정해연 작가 특유의 정적이고 섬세한 필체로 풀어낸 심리 스릴러 작품이다.
이야기는 한 고등학생의 의문스러운 죽음에서 시작되며,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 진술, 감정, 침묵 속에서 과연 누가, 왜, 어떻게 죽였는지를 파헤쳐나간다.

작품의 진가는 단순한 ‘범인을 찾아가는 플롯’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범죄를 어떤 시선으로 소비하는가,
개인이 진실을 어떻게 기억하고 회피하는가,
그리고 무지와 침묵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정해연은 이 소설을 통해, “당신은 진실을 정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매우 불편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1. 평범한 일상에 침입한 질문: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학생의 죽음이 있다.
사건은 한 교내 폭력, 혹은 자살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곧 의도적 은폐, 무관심, 잘못된 기억들이 얽히며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가해자는 명확하지 않고, 피해자는 말이 없으며,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기억과 해석만을 진실이라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단지 ‘범인이 누구인가’를 넘어서, ‘진실은 누구의 시선에서 구성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마주한다.

특히, 학부모와 교사, 친구들, 경찰, 언론 등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면서 현실의 한국 사회가 범죄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반영한다.

누군가는 "그 애는 원래 이상했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우리는 몰랐다"라고 말하며,
또 어떤 이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무책임한 반응들이 실제로 어떤 폭력보다 더 큰 비극을 만든다는 점에서 작품은 사회적 고발로 확장된다.

 

2. 심리 묘사의 힘: 조용한 인물들이 숨긴 죄책감과 무기력

 

정해연은 심리 묘사에 있어 탁월한 작가다.
『누굴 죽였을까』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표면적으로는 모두 평범하다. 하지만 각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 죄책감, 무기력, 불안, 자기도 모르는 분노가 가득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들이 아무도 명확히 ‘살인자’가 아님에도, 결국 모두가 누군가의 고통에 가담한 공범이었다는 사실이다.

  • 방관한 교사
  • 알고도 침묵한 친구
  • 사건을 이용하는 언론
  • 가해 사실을 감싸려는 보호자

정해연은 이 복잡한 관계망을 자극적 묘사 없이, 짧은 대사, 생략된 감정, 반복되는 행동 속에 녹여낸다.

읽는 내내 독자는 스스로도 모르게 “나는 저 인물들과 다를까?”라는 도덕적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가장 조용한 인물일수록 가장 많은 비밀을 안고 있다는 이 작품의 전개는,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3. 결말의 질문: 정의는 밝혀지는가, 아니면 회피되는가?

 

이야기가 끝나갈수록 독자는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진실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해연은 이 작품을 통해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왜 우리는 진실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는가’라는 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결말은 깔끔한 해결이 아니다.
그렇다고 열린 결말만도 아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독자의 판단을 유보시킨 채, 독자 스스로 죄의 무게를 판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엔딩은 어떤 면에서는 불쾌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쾌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강한 메시지다.

진실은 때로 밝혀지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진실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결론: ‘누가 죽였는가’보다 ‘우리가 무엇을 외면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누굴 죽였을까』는 단순한 추리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건의 표면을 걷어내고,
그 아래에서 침묵하고 있던 감정과 무관심의 폭력을 들여다보는 심리소설
이다.

정해연은 복잡한 플롯이나 화려한 트릭보다,
인간 내면의 미세한 떨림과 망각, 두려움, 회피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스릴을 만들어낸다.

읽고 나면 결코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덕분에 이 책은 더 오래 기억된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침묵과 방조의 범죄를 문학적으로 섬세하게 다룬 걸작 심리 스릴러.
사회적 시선을 가진 독자, 인간 심리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반드시 추천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