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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리뷰 (심리 추리소설, 여성 서사, 일본 사회 비판)

by happy stella 2025.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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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일본 정통 추리소설의 계보를 잇는 노리즈키 린타로(法月綸太郎)의 작품으로,
외형은 미스터리 추리극을 취하고 있으나,
그 깊이에는 여성 서사, 트라우마, 사회 구조적 억압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고전 동화인 ‘백설공주’를 모티브 삼아
무고하고 아름다웠던 존재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동화 패러디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왜 표적이 되는가", "침묵은 언제 강요되는가", "범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구조적 질문들을 복합적으로 얽어낸다.

범인을 찾는 전통 추리의 서사 안에
여성의 고통, 피해자 중심 시선, 권력 비판을 녹여내며,
동시에 문학성과 사회성을 모두 품은 일본 현대 미스터리의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1. 동화의 역전, 상징의 해체 — 왜 ‘백설공주’는 죽음을 맞아야 했는가?

제목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자아낸다.
동화 속 순수함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선고함으로써,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여되는 이상화와 억압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야기 속 주요 인물들은 모두 어린 시절 학대, 성차별, 조롱을 경험했거나,
혹은 사회적 기준에서 ‘이상적인 여성상’에 부합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단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와 가족, 제도에서 비롯된 억압이다.

작품은 ‘백설공주’를 단순한 피해자 이미지가 아닌,
사회적 제물, 소비되는 이상향, 그리고 대상화된 여성성의 상징으로 해체한다.
즉, 그녀의 ‘죽음’은 단지 범죄 사건이 아니라,
억압된 여성의 운명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다.

이처럼 이 작품은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보다
‘왜 그녀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를 중심에 놓으며,
전통적인 추리 문법을 뒤흔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 고전 미스터리의 틀과 심리극의 융합: 서사의 밀도와 구조적 장치

노리즈키 린타로는 ‘정통파’로 알려졌지만,
이 작품에서는 고전 미스터리의 문법을 이용하되,
그 안에 현대적 불편함과 윤리적 고민을 직조한다.

소설은 살인사건 – 수사 – 반전 – 해명의 구조를 따르며,
주인공 형사와 미스터리 작가가 함께 사건을 추적하는 이중 주체의 시점이 전개를 이끈다.
그러나 독자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진실은 끝내 도달되지 않는다.
작가는 각 인물의 서사와 심리를 엮어 사실의 조각을 숨기고 왜곡하며,
“진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미스터리의 질문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중요한 서사 장치는 ‘침묵’과 ‘오해’이다.
피해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고,
수사자는 그 침묵 속에서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언어화되지 못한 고통,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반전 효과를 넘어서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 숨겨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말해질 수 없었는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장르적 쾌감과 동시에 무거운 감정과 심리적 이입을 요구하는 복합 서사다.

 

3. 여성 서사, 연대,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의 목소리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전통적으로 주변화되어 왔던 여성 인물들이 중심 서사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피해자, 용의자, 목격자, 주변 인물 모두가 여성이며,
그들은 단지 사건의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기원이자 종착점이다.

특히 피해 여성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대의 코드가 존재한다.
그들은 말하지 않지만 서로의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이 결국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핵심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서사는 단순한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구조적 억압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가를 보여준다.

또한, 작중 사회는 여성에게 항상 ‘침묵’을 요구한다.
강간, 학대, 가정폭력은 개인의 비극이 아닌
‘드러내선 안 되는 치부’로 취급된다.
작가는 이 침묵의 강요를 가장 거대한 ‘범죄’로 상정하며,
침묵을 깨는 행위야말로 가장 강력한 저항임을 드러낸다.

결국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말할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이상화된 여성’이라는 이미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탐구하는
젠더적 스릴러이자 사회적 고발문이다.

 

결론: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대한 판타지를 깨뜨리는 이야기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정통 미스터리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철저히 사회비판적이고, 젠더 감수성을 가진 문학 작품이다.
살인사건의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독자는
단순한 진실의 퍼즐이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무게, 침묵의 고통, 말하지 못한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백설공주는 죽는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의 흉계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 ‘순수함’, ‘수동성’이
사회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추리는 끝났지만, 진실은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독자에게 ‘읽고 끝내는’ 독서가 아니라, ‘질문을 시작하는’ 독서를 유도한다.

📚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체로 세운 미스터리를 찾는다면,
📚 장르의 틀 안에서 사회를 해부하는 문학성을 찾는다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꼭 읽어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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