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치밀한 논리와 인간 심리의 미세한 떨림을 동시에 잡아내는 작가다. 그의 스릴러는 범죄의 퍼즐을 푸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끝까지 추적한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악의》, 가가 교이치로·갈릴레오 시리즈 등은 동시대 독자에게 “왜 그랬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공감과 불편함 사이에서 오래 잔상을 남긴다.
인간의 본성을 해부하는 시선: 동기의 서사, 상처의 얼굴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는 ‘누가’보다 ‘왜’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범죄를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접근한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이시가미는 연민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극점에서 냉정한 논리를 구사한다. 이 간극은 그의 세계가 지향하는 핵심이다. 인간은 논리적 존재인 동시에 감정의 포로이며, 그 양면이 충돌할 때 비극이 발생한다. 《백야행》은 더 멀리 간다. 선악의 흑백을 지워버리고, 상처가 어떻게 인생의 궤도를 바꾸는지 19년에 걸쳐 보여준다. 독자는 ‘악’을 멀찍이 두고 비판하기보다, 그 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따라가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을 확인한다. 《편지》와 《방황하는 칼날》이 던지는 질문은 더욱 사회적이다. 범죄자의 가족은 어떤 삶을 강요받는가, 피해자의 분노는 어디까지 정당한가. 히가시노는 극단의 감정이 사회의 제도, 미디어, 주변인의 시선과 맞물리는 순간을 냉정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서 범죄는 결말로 정리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다. 그는 피와 트릭의 장치보다 망설임, 침묵, 회피 같은 ‘사소한 감정의 습관’을 열심히 기록한다. 독자는 그 작은 흔들림 속에서 “나라도 그렇게 했을까?”라는 불편한 자기 질문을 마주한다. 이 지점에서 히가시노의 스릴러는 오락을 벗어나 인간학적 탐구가 된다. 악역조차 ‘완전히 나쁘지 않은 사람’으로 복원되며, 독자는 이해와 거리 두기 사이에서 오래 흔들린다. 그 흔들림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남기는 가장 강력한 잔상이다.
논리와 감정의 합주: 치밀한 플롯과 여운의 미학
히가시노의 장점은 구조와 감정의 동시 구동에 있다. 그는 ‘단서-추론-반전’이라는 고전적 삼단 구조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핵심의 무게를 인물의 감정선에 배분한다. 《악의》는 사건의 진실이 반복 증언 속에서 뒤집히며, 독자는 진범의 정체가 아니라 ‘왜곡된 감정’의 존재를 마주한다. 말수의 변화, 사소한 어휘 선택, 회상 장면의 미세한 어긋남 같은 텍스트의 디테일이 곧 결정적 단서다.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는 《신참자》·‘가가 시리즈’는 일상의 사연을 통해 사건을 해명한다. 히가시노는 ‘증거’만큼 ‘정서’를 다룬다. 사람 사이의 오해, 체면, 미안함, 고집 같은 감정의 잔류물이 수사선 위에서 조직적으로 정리되는 순간, 독자는 논리의 쾌감과 함께 묵직한 여운을 얻는다. 갈릴레오 시리즈에서는 물리학적 현상과 트릭을 결합해 지적 쾌감을 선사하면서도,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 질투, 집착임을 확인시킨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모든 변수를 통제한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라는 과학적 가정으로 시작해, 예측 불가능한 인간 감정 앞에서 멈춰 선다. 히가시노의 반전은 폭죽이 아니다. 초반에 심어둔 생활의 디테일이 마지막에 의미를 바꾸며 ‘조용한 충격’을 만든다. 그래서 결말이 닫혀도 마음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플롯의 잔여감, 인물의 미해결 감정이 여백으로 남아 독자를 다시 첫 장으로 돌려보낸다. 그 반복 독서의 욕망이야말로 히가시노 스릴러의 완성도를 증명한다.
세계로 확장된 공감: 보편 감정과 동시대성의 결합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일본을 넘어 한국, 중국, 유럽 등지에서 꾸준히 읽힌다. 그 비결은 ‘보편 감정’과 ‘동시대 쟁점’을 동시에 붙잡는 태도에 있다. 사랑·죄의식·구원·희생 같은 감정의 원형이 서사의 중심축을 이루고, 그 주변에 교육, 노동, 가족, 지역 공동체의 균열 같은 현실적 테마가 겹겹이 얹힌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순문학적 감성으로 널리 사랑받은 배경도, 타인을 돕는 행위가 타인의 인생만이 아니라 ‘나의 상처’를 변화시킨다는 메시지의 보편성에 있다. 스릴러 스펙트럼의 가장 어두운 작품들조차 ‘공감의 핵’이 빠지지 않는다. 일본 대도시의 고립감, 경제·세대 격차, 미디어의 여론재판 등 동시대의 불안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히가시노는 늘 개인의 사정을 먼저 듣는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특정 사건의 기록을 넘어서 사회심리학적 문서처럼 읽힌다. 영상화에 최적화된 장면 설계도 세계 확장의 촉매가 됐다. 장면 전환이 명확하고, 후반부의 감정 클라이맥스가 시청각매체의 문법과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국내외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드라마·영화화는 원작의 인지도를 확장했을 뿐 아니라, ‘히가시노식 정서 스릴러’라는 장르 감각을 널리 전파했다. 더불어 그는 과학기술과 윤리의 경계, 기억과 정체성, 지역 공동체의 균열 같은 변화무쌍한 의제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덕분에 초기작과 중·후기작을 연속으로 읽어도 낡지 않고, 오히려 ‘질문하는 방식’이 성장했다는 인상을 준다. 히가시노의 세계가 국제적으로 통하는 이유는 결국 한 가지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인간의 마음이 겪는 흔들림은 닮아 있다는 사실. 그 진실을, 그는 이야기로 증명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는 범죄의 퍼즐과 감정의 진실을 한 권에 담아낸다. 그는 논리의 정밀함으로 독서를 이끌고, 공감의 밀도로 마음을 붙잡는다. 그래서 책을 덮고도 질문은 남는다. 정의와 연민은 어디서 만나는가, 나는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을 오래 품게 만드는 힘이, 히가시노 문학의 현재진행형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