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릴러 문학의 주목받는 작가 정해연은, 현실의 어두운 이면과 인물 내면의 갈등을 깊이 있게 그려내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스릴러 문학과 비교했을 때, 그녀의 서사는 복잡한 트릭보다는 현실적이고 감정 중심적인 접근을 통해 독자에게 강한 공감을 선사합니다. 본문에서는 일본 스릴러와의 구조적 차이, 심리 묘사의 방향성, 현실 사회 반영의 방식 등을 중심으로 정해연의 문학적 특징을 심층 분석합니다.
구조적 퍼즐 vs 감정 중심 서사 (구성 방식의 차이)
일본 스릴러 문학은 오랜 시간 동안 논리적 구성과 정교한 트릭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치밀한 플롯과 반전으로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서사로 유명하고,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적 메시지와 미스터리의 조화를 이루며 일본 문학의 깊이를 더해왔습니다. 일본 스릴러는 독자가 사건의 퍼즐을 함께 맞추는 '지적 게임'에 초점을 맞추며, 몰입도 높은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이에 반해 정해연 작가의 스릴러는 퍼즐을 풀기보다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배경을 따라가는 감정 중심 서사에 가깝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처음부터 범인이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하며,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주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유리의 살의』는 범죄 사건 그 자체보다도,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피해자의 내면을 조명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정해연의 서사는 전형적인 스릴러 문법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 구조를 추구합니다. 이는 일본 작가들의 정교하고 추리 중심적 구성과 차별화되며, 독자가 이야기 속 인물들과 정서적으로 밀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독자는 단순한 '사건'보다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며, 이는 한국형 스릴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냉정한 관찰 vs 공감적 묘사 (심리 서사의 방식)
일본 스릴러의 심리 묘사는 대체로 거리감 있는 관찰자적 시선에서 출발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예로 들면,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게 기술하되 그것은 작가 또는 탐정이라는 ‘제3자’의 시선을 통해 객관적으로 전달됩니다. 독자는 인물의 심리를 '이해'하지만, '공감'보다는 분석에 가까운 감정 흐름을 따라갑니다.
반면 정해연은 감정에 깊이 이입된 1인칭 또는 근접 3인칭 서술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독자가 직접 체험하게 합니다. 그녀는 피해자나 주변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추적하며, 트라우마, 억압, 분노, 고립감 같은 복잡한 감정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독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순결한 식사』는 가정 내 위선과 폭력을 주제로 하며,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 내면에 쌓아온 감정을 어떻게 폭발시키는지를 극도로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고, 동시에 주인공에게 감정적으로 밀착되기도 합니다. 이는 일본 스릴러가 종종 감정과 거리 두기를 선택하는 방식과 크게 다릅니다.
정해연의 심리 서사는 인간의 모순된 감정, 특히 여성의 억눌린 감정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긴장감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이는 현대 독자들의 정서와 강하게 맞닿아 있는 서사 전략입니다.
사건 해결보다 문제 제기 (현실 반영의 깊이)
일본 스릴러는 많은 경우 깔끔한 결말, 즉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범인이 잡히며 독자의 궁금증이 해소되는 구조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있지만, 이야기의 ‘해결’에 집중하는 전개가 일반적입니다.
정해연은 이와 달리 사건의 종결을 ‘해결’이 아닌 ‘질문’으로 남깁니다. 그녀의 작품은 문제를 제시하고, 그 원인을 추적하되 완전한 해결은 독자의 몫으로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현실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단순히 해결되지 않듯,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진실을 드러냅니다.
정해연의 소설은 사회적 문제—가정 폭력, 여성 혐오, 사회적 고립, 직장 내 권력관계 등—를 단순 배경이 아닌 핵심 갈등 요소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구조를 택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스릴러 장르가 단순히 범죄와 반전을 다루는 것을 넘어, 현실에 대한 인식과 성찰을 유도하는 문학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본 스릴러가 오랜 전통과 정교함으로 세계적 입지를 구축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해연 작가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퍼즐을 맞추기보다는 감정을 나누고, 객관적 분석보다 공감을 통해 몰입을 유도합니다. 현실의 어둠과 인간 심리의 복잡함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정해연의 서사는, 한국 스릴러 문학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단순한 비교를 넘어, 그녀의 작품은 한국형 스릴러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독립된 문학 세계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