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스릴러 문학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그는 범죄와 인간의 심리를 교차시키며, 논리적 구조 속에 감정의 깊이를 심어 넣는다. 이번 글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악의》 세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서사 스타일과 주제의식, 그리고 인물 묘사의 차이를 비교 분석한다.
《용의자 X의 헌신》: 사랑이 만든 가장 완벽한 비극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구조와 강렬한 감정선을 지닌 작품이다. 이 소설은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가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살인을 은폐하는 과정을 다룬다. 그는 완벽한 논리로 사건을 설계하지만, 그 모든 행위의 근원에는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자리한다. 히가시노는 수학적 사고방식과 인간적인 감정을 병렬 구조로 배치해, 냉정한 논리 속에서 가장 뜨거운 인간애를 드러낸다. 이시가미는 범죄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헌신적인 인간이다. 그는 법보다 사랑을, 진실보다 보호를 선택한다. 이 점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은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 윤리적 스릴러로 확장된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진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장면은 ‘이성의 완벽함보다 감정의 불완전함이 더 인간적’이라는 히가시노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이후의 모든 히가시노 스릴러의 근간이 되었으며, ‘범죄의 이유를 인간의 감정에서 찾는 작가’라는 평판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계산된 미스터리이자, 동시에 ‘사랑이 만든 비극’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완벽히 결합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백야행》: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린 인간의 초상
《백야행》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가장 장대한 구조와 복합적인 인물 심리를 담고 있다. 두 주인공, 야스코와 료지의 삶은 어린 시절의 살인사건에서 출발한다. 이후 19년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히가시노는 인간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살아남는가를 탐구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는 초반부터 범인을 알고 있지만, 그들의 행위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곧 이야기의 핵심이다. 히가시노는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끊임없이 뒤섞으며, 인간의 복잡한 도덕적 층위를 드러낸다. 야스코는 냉정하고 계산적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외롭고 상처받은 인물이다. 료지는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상대를 보호하는 모순된 감정을 보인다. 이들의 삶은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상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움직이며, 독자는 그들의 행동을 단죄하지 못한 채 이해하게 된다. 《백야행》은 범죄를 다루지만, 결국 인간의 생존 본능과 사랑의 변형을 보여주는 인간 서사 드라마다. 이 작품을 통해 히가시노는 단순한 추리작가에서 ‘인간의 어두운 진실을 해부하는 심리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악의》: 진실보다 왜곡된 감정의 공포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가장 실험적이고 냉철한 구조를 가진 스릴러다. 작가 아미야가 살해당하고, 그 친구 니시오가 용의자로 체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은 단순하지 않다. 히가시노는 이 작품에서 ‘진범의 정체’보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겨났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의 전개는 일기, 수사 보고서, 증언 형식 등 다양한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인물의 시선이 바뀔 때마다 진실은 뒤틀린다. 《악의》의 중심 주제는 질투와 인정 욕구다. 히가시노는 인간이 타인의 성공을 견디지 못할 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용의자 X의 헌신》의 따뜻한 인간애와 달리, 냉정하고 분석적인 심리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준다. 결국 ‘악’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정받지 못한 감정의 그림자임을 폭로한다. 《악의》는 일본 스릴러 문학에서 보기 드문 서사 실험이자, 히가시노가 인간의 심리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증명한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는 각각 다른 형태의 ‘인간’을 보여준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사랑의 비극, 《백야행》은 생존의 그림자, 《악의》는 질투의 미로다.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리지만, 결국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도덕과 사회를 흔드는가를 탐구한다. 그래서 히가시노의 스릴러는 단순한 장르를 넘어, 인간 그 자체를 해석하는 문학의 영역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