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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연 작가는 현실에서 출발해 스릴러 장르의 경계를 확장해 온 작가입니다. 그녀의 소설은 단순한 범죄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억압 구조와 일상의 공포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특히 사회적 문제를 구체적인 캐릭터와 사건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독자에게 공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이 글에서는 정해연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현실성과 사회성, 그리고 한국 사회가 스릴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봅니다.
일상에 스며든 폭력, 리얼리티의 근원
정해연 작가의 스릴러는 공포와 긴장을 창조하지만, 그 배경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녀는 ‘현실’ 그 자체에서 스릴러의 긴장감을 끌어냅니다. 예를 들어 『순결한 식사』에서는 겉보기에 평범한 가정이 사실은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유리의 살의』에서는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혐오와 방치된 감정이 살인을 유발하는 배경이 됩니다.
이러한 현실 기반의 스릴러는 단순히 허구의 사건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가정 내 폭력,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고립감 등은 그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입니다. 그녀의 소설이 가진 공포는 초자연적인 요소가 아닌, 현실의 무심함과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되며, 독자는 ‘이건 진짜 있을 법한 일’이라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정해연은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내면에 끔찍한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설정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 설정은 현실 사회에서 ‘평범함’이라는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위선을 드러내며, 그것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스릴러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합니다.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의 묘사
정해연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사회적으로 약자이거나, 억압받는 위치에 놓여 있는 존재입니다. 특히 여성, 아동, 비정규직 노동자, 중년의 외로운 인물 등은 그녀의 작품에서 중심 서사를 이끌며, 그들이 마주하는 구조적 문제와 심리적 압박은 스릴러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게 어른이라면』은 직장 내 괴롭힘과 경력 단절,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다양한 불합리를 그립니다. 주인공이 겪는 모멸감과 무력감은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며, 그것이 결국 폭력성과 분노로 전이되는 과정을 통해 정해연은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사회비판적 시선을 녹여냅니다.
정해연은 특히 ‘보이지 않는 권력’을 탁월하게 묘사합니다. 법의 사각지대, 직장 내 위계질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억압 구조 등이 그녀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작동합니다. 이처럼 외적인 갈등뿐 아니라, 인물이 처한 구조적 억압 자체가 긴장을 생성하는 장치로 활용되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범죄 사건의 해결보다 사회적 맥락의 이해를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러한 점은 일본이나 서구의 전형적인 스릴러와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정해연 스릴러의 리얼리티는 바로 이 구조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한 심리적 리얼리티
정해연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인물의 내면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입니다. 많은 전통적인 스릴러 소설이 남성 탐정이나 수사관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해 왔다면, 정해연은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위치에 놓인 일반 여성의 감정선을 주요하게 다룹니다.
예를 들어 『유리의 살의』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 내에서 차별을 겪고, 성장 후에도 사회로부터 외면받습니다. 이 인물의 분노와 공허함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구조적 억압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내면의 흐름을 세심하게 추적하고, 감정의 흐름이 행동으로 변하는 순간을 매우 리얼하게 포착합니다.
정해연의 여성 캐릭터들은 단순히 피해자이거나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극도로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인물에게 공감하고, 때로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녀의 작품은 스릴러 장르 안에서 감정의 리얼리티, 특히 여성의 감정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되며, 이는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젠더 갈등과도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해연 작가의 스릴러는 단순히 사건 중심이 아닌,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맥락과 감정의 축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둡니다. 그녀는 한국 사회 속에서 흔히 벌어지는 문제들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폭력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그녀의 작품이 가진 리얼리티는 단지 사실적 배경이 아닌, 정서적 진실과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정해연의 스릴러는 읽는 사람에게 공포 이상의 것을 남깁니다 — 생각할 거리, 공감, 그리고 질문입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정해연의 스릴러는 앞으로도 한국 장르문학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할 것입니다.